신령님이 보고 계셔 (홍칼리,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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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나요? 희생 없이 공존할 방법은 없나요?” 곧이어 파차마마의 응답이 들렸다. “그래서 사물을 준 거야. 물, 불, 공 기, 흙. 다른 말로 나무, 불, 흙, 금, 물. 그러니까 의자 하나도 소중히 다루고 쓰레기 하나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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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땅의 진동을 느껴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붉은 천들이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몸이 함께 떨렸다. 함께 울고 웃는 만물의 정령이 느껴졌다.

자연과 함께 떨리는 이 기분을 안다. 사파 대나무 숲의 강한 기운을 나는 잊지 못한다. 모든 것이 당연한 순간이었으며 그러므로 자연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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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도 혼이 머문다. 만물은 살아있다. 나의 작은 신당에 놓은 사물들을 본다. … 이 모든 것이 소중한 신물로 보인다.

‘만물에는 신이 머문다.’ 자명한 이치다. 그러기에 나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럴 때에 만물 속에 자리잡은 신을 만날 수 있다. 서두르지 않은 채 천천한 속도로. 알맞은 흐름을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