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손택의 말 (수전손택, 조너선 콧,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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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적이라는건, 내게는 어떤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은 게 아니다. 그건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나는 나 자신이 수동성(그리고 의존성)을 두려워한다는걸 알고 있다. 내 정신을 활용하면, 그 무엇이 나를 능동적으로(주체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준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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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강인하다고 느끼게 하는가?” 손택은 일기에서 이렇게 묻고 스스로 답했다. “사랑과 일에 빠져 있는 것”과 “정신의 뜨거운 고양”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일이라고. 분명 손택에게는 사랑하고 욕망하고 사고하는 것이 본질적으로는 동일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다.

정신이 앎을 향해 손을 뻗을 때 욕망의 공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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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것과 알게 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진정 살아 있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다방면으로 작업하면서 손택은 항상 남성/여성이라든가 젊음/늙음 같은 전형적인 범주에 도전하고 전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이 인간으로 하여금 제한적이고 위험을 회피하는 삶을 살도록 유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극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쓰다듬는 방향에 따라 두가지 질감과 다른 느낌, 두 가지 인식 방법을 제공하는 벨벳의 솜털처럼 단순히 각자의 일면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꾸준히 검도하며 시험했다.

그녀는 세상이 흑백이 아니라 컬러풀일수도 있다고 말하고 내 친구는 흑백은 사실 다르지 않으며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동서양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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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정치선동은 거기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또 다른 것이 있다…

대중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게 두렵다. 내 진실성과 오리지널리티를 떠내기 전, 대중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 자기검열과 자기변명을 끝없이 한다. 이렇게 명료히 내 생각에 대중에게 정하는 한마디를 덧붙이는 정도면 충분하다. 말이 길어지면 힘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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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진실은 침묵, 숙고, 글 쓰는 행위 그 자체와 연루되어 있습니다. -J.M. 쿳시

그에게 진실은 침묵이다. 그에게 글쓰는 건 진실에 다가가는 행위에 가깝다. 나도 그렇다.

“나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좋아해요.” 그녀는 언젠가 내게 말했다. “대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문답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좋아하는 거죠. 그리고 내 사고의 상당 부분이 대화의 소산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어떤 면에선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혼자 해야 하고 그래서 나 자신과의 대화를 꾸며내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이건 본질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한 활동이거든요. 저는 사람들에게 말하는걸 좋아해요. 그래서 은둔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대화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를 주죠. 관객은 추상이기 때문에 관객의 생각을 알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누구든 개인의 생각은 당연히 알고 싶은데, 그건 일대일로 만나야만 가능한 일이죠.” -손택

손택에게 사고는 대화의 소산이다. 나는 혼자 정리하고 침묵으로 진실에 다가간다. 깊은 사고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대화로만 살아가던 사람이었고 고립된 곳에서 혼자 지내며 ‘사고함/살아있음/살아감’의 감각을 느낀다. 그 전엔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렇다. 나는 사고할 때 살아있음의 감각을 느낀다. 인생의 중심점을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야 할 때임을 느낀다. 내게 있어 대화는 종종 나를 자극시켜줄, 나를 의심하도록 만들어줄, 그래서 나를 더 견고히 만들어줄 역할이다. 

1965년의 일기에서 수전은 다짐한 바 있다. “<파리리뷰>의 릴리언 헬먼만큼 명료하고+권위적이고+직접적인 말투를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인터뷰는 일절 하지 않을 것.” … 내가 인터뷰를 해본 거의 모든 사람과 달랐던 점은 수전이 문장이 아니라 정연하고 여유로운 문단으로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게 가장 뚜렷한 인상으로 남은 건 그녀가 자신이ㅡ 사유를 구획하고 부연설명하는 그 엄정함과 더불어 ‘윤리적. 언어적 세부 조율’이었다. 그녀는 괄호로 묶은 발언들과 수식어들 (가끔, 간호그 대개, 대체로, 거의 모든 경우에)을 써서 의도한 의미들을 정확하게 조정했다. 풍부하고 유창한 그녀의 대화는 소위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말에 취한다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뚜렷하게 체현해보였다. “나는 창조적인 대화로서의 수다에 꽂혀있다.” 그녀는 일기에서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그 뒤에 덧붙여진 말은 “내게 그건 구원의 주된 매개체다”였다.

수전손택의 말

그런데 사유하지 않으면 흔히 통용되는 클리셰를 옮기는 매개체가 되기 십상이거든요. 상당히 계몽된 형태의 클리셰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제 친구가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어요. 그 때 그는 질투를 다루는 프루스트의 작품을 완전히 다른 기분으로 읽게 되었고 질투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하면서 그 관념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고 내게  말했어요. 그 과정에서 프루스트의 텍스트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경험과도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요… 그가 질투를 경험해보기 전, 과거에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질투에 대해 읽을 때는 자기 경험의 일환이 아닌 무언가를 읽는 사람의 방식으로 읽었던 거죠. 정말로 체험해보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실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삶에 호기심이 생길 때 철학이 시작된다. 그때 삶과 책이 연결된다. 삶 속에서 책을, 책 속에서 삶을 떠올린다. 이렇듯 손택은 경험은 철학을 하게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나는 경험을 하기 위해 사유를 한다.실감하기 위해, 체험하기 위한 사유를 나는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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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나는 지금 내 안으로 골몰한다. 내가 품은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으로 작업을 한다. 내가 파고드는 본질적 물음에, 내가 보여주는 내 안의 세계에 관객은 공감하고 그들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모두 통하게 되어있다고 믿는다. 뭐 어쩌겠어. 닿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고 나는 내 안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작업을 해야지. 그게 가장 중요한 걸.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세계속의 나였다. 나만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내 본질이나 내 안에의 탐색도 결국 세계와 연결된 일이다. 그냥 몰두하자. 하고싶은 대로. 인정과 남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는 탓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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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썼던 건 내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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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모든 것이 함께 공모해, 우리 삶의 방식에서 가장 진부한 수준의 감정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제거하려 합니다. 사유가 생겨날 때부터 항상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던 성스러운 것 또는 다른 차원의 초절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그 ‘다른’ 상태를 묘사했던 종교적 어휘들이 무너져버린 거죠. … 종교적 어휘들은 모조리 붕괴했고, 대신 그 자리에 의학적이고 정신과적인 어휘들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탐하는 본질에 대한 어휘. 독서의 좋은 점은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한 주제를 통해 계속되는 문답으로 그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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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지 말라. 설명을 하거나 이해하려 노력하지 말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어요. 그냥 x의 참된 의미가 y가라고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자체로서의 사물을 저버리지 말라는 거죠. 그 자체로 정말로 존재하는 사물이니까요. 질병은 질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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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널드 랭의 사상을 수용한 사람들이 다수라고 생각지 않으시나요? 어쨌든 미친 사람은 우리가 모르는 걸 알고 있고 의식의 어떤 극에 다다른다는 생각 말이에요. … 미치는 게 낫다고 하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지만 그 광기는 자폐증의 기능이라는게 명백하고, 또 어떤 면에서 고립되어 있어야만 화가로서의 천재를 유지할 수 있는데 그 고립 자체가 광기의 결과죠. 

그게 릴케가 한 말이죠. “내 악마들을 빼앗아 가지 말라, 천사들도 함께 떠날 테니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항상 함께 간다. 언제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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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회의 최우선 요건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주변성을 허락하는 거예요. 포용할 여유.

주변성을 허락하지 않는 한국사회와 그 속에서의 불안이 나를 중심적 존재양식에 속하려고 애쓰게끔 만들었다. 내 길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나의 길과 다른 사람의 말 사이에서 오랜 기간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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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리즘을 빼고 나면 우리한테 뭐가 남겠어요? 제 말은, 우리가 하는 일을 잘하려고 애쓰고 또 진지하고 만족스러운 작업의 가능성들을 확장하려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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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리가 행하고 사유하는게 “역사적인 창조물”이라는걸 알고 있어요. …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소위 낭만적인 혁명기라고 불리는 시대에 뿌리박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본질적으로 아직도 여전히 그 시기에 형성된 기대와 정서를 다루고 있단 말입니다. 행복, 개인성, 급진적인 사회변혁 그리고 쾌감 같은 관념들이요. 우리는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탄생한 어휘를 물려받았어요.

내 본질에의 탐구 관념 해체 시도도 모두 자연에서 근거한게 아니라 창조물일 뿐이라면, 생각놀음 뿐이라면 너무 허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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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이런 뿌리들을 문화적으로 어디에 두고 있는가. 세계를 관찰하는 일과 전자, 다매체, 다채널의 매클루언적 세계에 주파수를 맞추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을 향유하는 일은 전혀 양립 불가능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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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은-펑크록을 쓸모 없다고 말하는- 본능적으로 육감적으로 성적으로 감흥을 느낀 적도 없기 때문에 쉽게 그런 소리들을 하죠. … 모든건 늘 오용되게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또 사람들은 얽히고 설킨 것들을 풀려고 애쓰게 되어 있어요.

핵심에 집중하자. 오용된 것에 주의 기울이지 말자. 그건 본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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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복잡하다는 건 우리가 처한 상황의 인간적 본질이니까요. 모든 것에는 상충되는 충동들이 있고, 우리는 계속 모순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런 것들을 정리하고 파악하고 정화하고자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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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고유한 형태의 공격성이 ‘고조’되는 측면이 카페라의 활용으로 상징되는 것 같아요.

공격은 삶의 정상적 리듬 범주

무언가를 보고 집에 가져가고 싶다고 느끼면 사진의 형태로 가지고 갑니다.

우리는 사진으로 세상을 전유하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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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은유는 무엇인가요?

사유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이론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방식이란 암시들과 저변에 깔려있는 은유 또는 패러다임을 파악하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그게 제게는 자연스러운 이해의 방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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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사유에 핵심적이지만 쓸 때는 은유를 믿으면 안 돼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허구라는 걸 알아야 하죠. 내 마음을 끄는 건 항상 그런 회의주의를 표현하면서 은유를 넘어 깨끗하고 투면한 무언가로 나아가는 담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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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멈추게 만들고 소정에 태도에 가둬버리는 수단이 될 때 그것을 사유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 사유를 하려면 은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은유 구축에 연루되잖아요. 그렇지만 적어도 물려받은 은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회의적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사유를 막는 더깨들을 깨끗하게 씻고 공기를 들이고 닫힌 문들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죠.